무력이나 행동으로 항거하여 큰 공적을 세우고 의롭게 돌아가신 분을 우리는 의사라고 합니다. 양재역에서 서초 20번 마을버스를 타고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갔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큰 기념관이 보였습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위치 : 서울시 서초구 매헌로 99
관람시간 : 하절기 (3월~10월) 오전 10시 ~ 오후 6시 / 동절기 (11월~2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관람료 : 무료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 다음 날 휴관), 1월 1일, 설. 추석 연휴
문의전화 : 02-578-3388
윤봉길 의사님은 우리에게는 도시락 폭탄을 던진 분으로 유명한데요, 이것도 사실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고 실제로는 물통 폭탄입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는 우리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윤봉길 의사의 모든 것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기념관으로 가는 입구에는 윤봉길 의사가 의거 전 찍었던 사진을 재연해볼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총과 폭탄 같은 소품까지 말입니다.^^ 우선 관람을 먼저 해야겠다는 상각에 기념관으로 입장했습니다. QR체크인을 하고 손 소독을 한 뒤에 경건한 마음으로 입장했습니다.
윤봉길 의사님은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덕산군 현내면 조량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학교에 다니게 된 윤봉길 의사님은 학교에서 식민지 교육을 하자 학교를 그만두기에 이릅니다. 이때부터 윤봉길 의사님은 남다르셨던 것 같습니다. 잘못됨을 알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실천으로 옮기는 용기를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 농촌에서의 문맹 퇴치 및 계몽 운동에 앞장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윤봉길 의사님이 무뚝뚝하고 조용한 성격이셨다고 하는데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을 보며 무뚝뚝하고 조용할지언정 리더십이 있고 뜻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으시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농촌에서의 계몽운동만으로는 독립운동의 한계가 있음을 느낀 윤봉길 의사님은 중국으로 떠날 결심을 합니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가족들과의 헤어짐을 그린 영상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가족들이 얼마나 속상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속상한 것보다 걱정이 많이 되었겠다 싶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가서도 취직한 공장에서의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의로운 모습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32년 4월 29일에 홍커우공원에서 전승축하기념식을 연다는 것을 알게 된 윤봉길 의사님은 의거를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하신 윤봉길 의사님의 발언은 존경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가슴에 한점 번민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니... 나로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나는 너무 떨리고 무서워서 초조했을 것 같다. 우선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중국 역시 많은 감동을 받아 우리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윤봉길 의사님은 사형을 받고 일본에서 순국을 하시게 됩니다. 이후 일본은 윤봉길 의사의 묘를 사람들이 밟고 가도록 암매장을 합니다. 죽음마저 당당한 윤봉길 의사님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왔습니다. 불꽃같이 살다가 간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분이겠구나 싶습니다.
매화 만들기 체험을 통해서 글을 써보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간단하지만 재미있게 매화를 만들고 윤봉길 의사님께 감사한 마음을 글로나마 남겨보았습니다.
관람 후 기념관을 나와 입장할 때 보았던 포토존을 다시 보았습니다. 보고 나오면서 찍어야지 했는데 차마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재미로 기념할 거리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윤봉길 의사님의 마음이 보였기 때문에 가볍게 들고 찍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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